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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아이
 
얘들아,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건 햇빛이란다.
권정희   2009-10-09 3567


 

점심을 먹고 들어가니까


내가 근무하는 체육관리실에 고3여학생 6명이 와서 자기들끼리 뭔가 얘기를 주고 받으며 반성문 같은 것을 쓰고 있다. 내용을 맞추며 쓰는 것 같다.


아침에 3학년 체육선생님께 들었던 그 건이구나 라고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3학년 여학생 중 투포환선수가 나머지 친구 5명의 비호 하에 1명의 지지자를 둔 2학년 여학생을 때렸단다.


투포환선수...


급기야 맞은 여학생의 친구가 교장실로 찾아가서 구원요청을 함으로써 사정은 밝혀지게 되었다.


체육부장님말씀으로는 그  두녀석이 그 전에도 그런 적이 있어 무척 신경써서 지도하고 있던 중이라고 하셨다. 중학교 때부터...


알고보니, 투포환선수가 중학교 선후배시절에도 한번 때린 적이 있었는데, 그 사실을 이번에도 얘기하며 따졌다고 한다. 엄청 상처를 받았던가보다.


다른 선생님들께서 식사하러 가신 사이에 내가 그녀석들을 타일러보기로 했다.


내가 보기에는 선배고, 때린 놈들이 반성문을 반성문답게 쓰는 것 같지가 않았다. 이유는 후배가 원인 제공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들만 반성하기는 억울하다는 것이다. 때릴 만 하니까 때렸다는 것....


일단 아이들의 감정을 받아들였다.

그런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람이 바뀌는 게 그리 쉬운 게 아니란 건 잘 알거야.

후배더러 이래저래 바뀌라 하지말고 너희 선배부터 한번 바뀌어보자.


나그네 옷을 벗기는 건 바람이 아니고 햇빛이쟎냐?

너희가 나무라고 때린다고 그 아이가 결코 바뀌지 않는다.



느낌을 줘라. 말로 가르치지 말고 선배답게 모범을 보여라.

머리 굴려 빠져나가기 위한 반성문 쓰지 말고 진심으로 그 후배 입장이 되어보고 진심으로 써라

그 후배는 예전에도 네게 맞은 적이 있어 그 상처가 오늘의 일을 만든 것이다.

그 악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자.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고 저주하고 있다면 내가 잘 될 수 있겠니?

누군가의 가슴에 상처를 내고 내가 정말로 편안하게 잘 살 수 있을까?

그 아이의 아픔을 느껴보자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걔는 그러면 오히려 자기들을 무시할 거라면서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다부지게 눈에 힘을 준다.


내가 다시 말했다.

한 번 하고, 한가지 주고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정말 욕심이고 오만이다.

너희 어머니가 한번 말씀하셔서 너희들이 곧장 바뀌지 않지 않니?


너희가 정말로 앞으로 큰 재목으로 성장하고 싶거든 사람을 포용해라.

내 눈에 맞는 사람과 잘 지내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거역하고 거슬리는 사람이 내 앞에 있을 때, 그것이 약자이고 또한 후배이거나 어린 사람일때는 더욱 그렇다. 그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라


결코 약자에게 세게 나가지 마라. 그건 비겁하다.

내가 볼때 너희는 정의감도 있고, 나름대로 자기 주장 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약한 사람 심정을 얼마나 알까 싶다.

포용해라. 그래야 따른다. 그래야 바뀐다.


조건없이 세번, 다섯번, 열번이라도 그 후배가 마음을 열 때까지 진심으로 사과하고 다가가라.

앞에서는 바로 태도를 바꾸기가 쑥스러워 표현하지 않을 지몰라도 분명히 마음으로 변하게 된단다.


조금이라도, 무엇이라도 더 많이 가지고 강한 사람이 먼저 열고 베풀어야한다.

어머니가 너희들에게 그렇게 하시듯이 말이다.

그것이 너희에게 성장이란다.


얘들아, 먼저 더 많이 다가가라. 그리고 후배가 마음을 열 때까지 진심으로 사과해라.


내 목소리는 강하고 단호했지만, 눈빛은 정말 애절했다.

상처받은 후배가 가여웠고, 일찌감치 다수의 횡포, 선악의 단죄를 위해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확신해버린 녀석들의 영혼이  또한 가여웠다.


그렇게 완강하게 거부하던 녀석들 눈빛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


선생님 같은 사람은 처음 봤어요.

그렇게 가르쳐주는 사람 처음 봤단다.


내가 나의 아들에게 나 자신이 너무 미숙해서 본의 아니게 상처주고 뒤늦게 뉘우치고 다시 마음 여는 데 7년이 넘게 걸렸다는 얘길 해줬더니,


자기 엄마한테 엄청 많이 맞았다며 엄마를 죽이고 싶은 적도 있었다고 하면서 그래서 인지 요즘도 작은 일에도 자꾸 성질이 불끈불끈 올라온다고 했다.

꺼내놓게 힘든 얘기들을 툭툭 쏟아낸다.


녀석들 영혼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걸 난 분명히 느꼈다.


그리고 때렸던 투포환선수는 정말 깊이 뉘우치고 반성하는 빛이 역력했다.


아이들은 형식적으로 쓰던 반성문을 다시 쓰겠다고 했다.


고3. 이제 어른이 다 돼어가는 나이다. 어떻게 보면 틀이 강해질대로 강해져 자존심을 꺾지 않을 수도 있을 나이련만, 나의 간곡한 가르침에 아이들은 끝내 빗장을 열어주었다.


이런 인도는 내가 겪어보지 않고 어찌 이론으로 가능할 일인가 싶다.

내가 겪었던 수많은 시련과 고민과 길을 찾고자 했던 갈구가 있었기에 나의 한마디한마디가 공허하지 않았던 거다.


어른이, 부모가, 교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나는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 후배가 오랜 상처를 씻고 밝아지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오늘의 그 영혼의 교감을 아이들이 잊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들아~


누구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아름다운 샘을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찾을 수 있단다. 

씩씩한 사랑합니다, 어색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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