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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면서 가지게 되는 많은 문제들 중 하나가 소통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오래 지내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40년을 함께 살아도 그 속을 모르겠다고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말안해도 이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는거 아니냐는 말을 한다.
오늘 아침에 우연히 라디오를 들었는데 아이의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였다.
집에서 자꾸 동전이 없어져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의 가방안에서 짤랑짤랑 소리가 나더라는 것이다.
(물론 엄마는 그만한 돈을 아이에게 준적은 없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아이가 길에 있는 돌멩이, 나뭇잎을 주워서 자신의 것이라고 할 때 우리는 그것에 대해 탓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있어서 길의 돌멩이와 탁자위에 놓여진 동전이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이고
아무도 탁자위의 동전은 네 것이 아니고 가져가기 위해서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당연히 아이가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조금은 단적인 예가 될 수 있지만 우리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내 아이가 돈을 함부러 가져가다니! 라는 생각보다 이 아이가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아이는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물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즉, 아이의 행동을 진정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순수한 관심과 애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떨때는 나도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는데 상대방(비록 아이라 하더라도)에 대해서 내가 다 알고 있다는 것은 조금 무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차피 상대방을 다 이해할 수 없으니까 ''''너는 너고 나는 나''''라고 생각해야할까?
그렇게 살기에는 내가 살아야 할 날들이 너무 많이 남았고, 너무 외로울 것 같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소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삶이라는 것 - 서로 관계를 맺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이 모든 과정을 내가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고, 더 성숙된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바라본다면,
나도 조금은 부족하고 상대방도 조금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상대방에게 조금 더 연민과 애정을 가진다면
조금은 상황을 바라보고 상대방을 바라보는데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홀로코스트의 생존자 에티 힐레줌의 <회고록>에서
나는 여간해서 겁을 먹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상대방 역시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오늘 아침에 일어난 일의 실제적인 요점이다. 불만에 찬 젊은 게슈타포 장교가 내게 소리를 질렀을 때, 내가 분노를 느끼기보다 오히려 그에게 진정으로 연민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의 어린 시절은 매우 불행했나요? 당신의 여자 친구가 실망시켰나요?’ 그렇다. 그는 매우 지쳐 보였고, 우울하고 허약해 보였다. 그 때 나는 그 젊은 장교를 그 자리에서 치유해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런 가엾은 젊은이들을 인간 사회에 풀어놓으면, 그들은 곧 위험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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