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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하나를 잡을 뻔한 이야기를 쓸까 합니다..
어제는 고3 마지막 모의고사였습니다.
예전에도 모의고사날이 되면 대학에 이미 붙은 아이들이나 수능에 관심없는 아이들이 한두명씩 와서 조퇴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조퇴하겠다고 오는 아이들이 왜 그리 많은지...
어떤 아이는 감기라고 아프고, 어떤 아이는 마음이 아파서 위염에 걸렸고, 어떤 아이는 낮밤이 바뀐 생활로 몸이 견디지 못하고.. 등등
이렇게 하나하나 이야기하고 조퇴를 시키는데 마지막 아이가 나타났습니다.
배가 아프다고 하는거였습니다. 어떻게 아프냐고 물어보니 아침에 햄이랑 고기를 먹었는데 아랫배가 아픈데 화장실에 가도 안된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변비라고 하면서 양호실 가서 약을 타먹으라고 하고 조퇴를 시켜주지 않았습니다.
근데 참 이상한 것은 그 아이 이전의 4명의 아이들은 모두 조퇴를 허락했거든요...
하여간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종례도 어수선하게 대충하고 보냈습니다.
근데 퇴근하면서 생각해보니 종례 때 조퇴시켜주지 않았던 그 아이를 못 본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부터 드디어 이 놈이 무단으로 도망갔구나, 작년에도(제가 담임은 아니었지만) 잘 도망갔고,
3학년 되서 좀 잘 생활하더니, 드디어 대학붙었다고 도망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화가 났습니다. 이 놈이 진짜로 아프면 한번 더 와서 나한테 이야기하지도 않고 지 맘대로 집에가?!
뇌교육에서는 모든 감정과 상황은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자신이 창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의 무엇때문에 화가 나는 것일까, 그리고 이 ''화''라는 감정이 좀 더 구체적으로 무슨 감정일까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답답한 느낌, 짜증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조퇴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냥 갔기 때문에?
왜 나는 그 아이를 조퇴시키지 않았을까?
그 아이가 조퇴한다고 했을 때부터 그 아이가 학교를, 교사를 무시한다고 생각한 것인가?
그리고,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조퇴를 하려는 아이를 막을 수 있는 강력한 제재수단이 없다는 것이 짜증나는가?
그래, 학교가 이 아이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고, 아이를 유도할(?) 무엇인가가 없다는 것이 짜증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너무 무력하게 느껴지는 구나.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짜증나는 거야...
그것만인가? 그것말고 또 나에게는 어떤 감정이 있지?
서운함도 있는것 같아. 이 일년간 내가 그래도 얼마나 열심히 잘해줬는데 이 아이가 이렇게 할 수 있나...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바란 것일까? 그리고 어떤 학생들은 보내주고, 어떤 학생들은 보내주기 싫은가?
내가 점장이도 아니고 진짜로 아픈지 아프지 않은지는 알수가 없잖아.
무엇으로 그것을 판단하는 것일까? 그래, 학생에 대한 신뢰야...
사실 나는 학생들하고 보내주네, 안보내주네 하고 실강이 하는 것도 싫어!
그냥 학생들이 알아서 정말로 아플 때 조퇴해 달라고 하고 나도 그것을 믿고 그냥 보내주고.. 이것이 좋은 것 아닌가?
그래, 나는 학생들을 믿을 수 있기를 바라는 구나. 신뢰할 수 있기를 바라는 거구나.
그래서, 그렇게 실강이를 하고, 내가 안보내주면 이 아이가 어떻게 하나, 도망가나 도망가지 않나 살피고 있구나...
신뢰, 신뢰, 신뢰... 그것을 나는 원하는 것이고, 아이들도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기를 바라는 구나.
이 마음을 아이들에게 내일 말해야지...
이렇게 정리하다보니 그 아이가 도망간 것에 대해 그다지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더 정확하게는 수능이후) 우리반 아이들이 잘 지내는 거고, 나의 느낌과 바램을 아이들에게 전하면 뭔가 잘 될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 아이는 내일 혼은 내줘야지. 신뢰와 믿음이 사회생활을 할 때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면서..
벌도 주긴 줘야겠지.. 청소를 시킬까.. 오리걸음을 시킬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이렇게 할 것을 잊으면 안되는데, 내일 아침에 꼭 아이들에게 말해야 하는데 하며 퇴근했습니다..
오늘 아침! 마침 찹쌀떡이 와서 아이들에게 떡을 나누어주고 아이들은 맛있게 떡을 먹는데
그 아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어제 끝까지 학교에 있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종례할 때까지 있었다는 거였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함께 있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이렇게 민망할 데가... 그리고, 순간 내가 뇌교육을 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뇌교육을 안해서, 나를 되돌아 볼 수 없었다면 나의 화를 돌아볼 수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오늘 아침 그 아이를 보면서 바로 큰 소리로 ''너 어제 왜 도망갔어?'' 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다면 내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겠죠..
감정을 정리했기에 다행히 조용히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물어볼 수 있었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작 아이들을 믿지 못한 것은 저였네요....
나부터 믿음과 신뢰를 가져야겠어요...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 맞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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